띄어쓰기가 없는 일본어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가독성이 엄청나게 떨어집니다. 우리가 존 로스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원어민도 피할 수 없는 덕분에 띄어쓰기 지옥문도 함께 열렸습니다.
정보는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생명을 다한 책들을 폐기하기 전에 소개하는 자연死도서관의 제10호 서적은 해문출판사에서 발행한 일본어한자사전입니다.
일본어 공부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읽는 법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한자 읽기는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도 힘들어합니다. 정말 멋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름 같은 경우는 한자표기에 매우 관대하기 때문에 읽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름표기는 룰이 없는 수준입니다.
일본어의 한자표기는 일본어를 한자로 바꾸는 개념입니다. 일단 일본어로 문장을 쓰고 그 문장 안에 의미별로 단어를 한자로 바꾸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결국 한자가 일본어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일본어가 한자로 바뀌는 개념이라 한자 하나당 읽는 법이 하나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 일본어 단어가 하나의 한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요즘 일본 유튜브를 보면 여행지의 표지판 같은 것을 읽지 못해서 곤란해하는 일본인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일본어는 한자보다는 아예 영어를 줄인 후 일본어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점점 한자보다는 영어단어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유(牛乳)'라는 한자 표현의 '규우뉴우(ぎゅうにゅう)'보다는 milk의 일본식 발음인 '미루쿠'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변소(便所)'의 한자 읽기인 '베은죠(べんじょ)'대신 toilet의 일본식 발음인 '토이레'라고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복잡해서 원어민도 혼란스러운 한자를 쓰는지 궁금해집니다. 일본도 한자를 버리고 모두 일본의 기본문자인 가나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난 시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본어에 띄어쓰기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지 생각합니다. 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가나로만 쓰게 되면 어디서 끊어서 읽어야 할지 찾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대신에 한자를 넣어서 쓰면 띄어쓰기가 없어도 문장의 구분이 잘되고 뜻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자는 매우 압축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한눈에 뜻을 알아보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긴 단어의 경우 한자로 쓰는 것이 오히려 가나로 쓰는 것보다 쉬운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한글도 띄어쓰기가 없었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띄어쓰기도 없으며 한자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한글 띄어쓰기는 개화기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라는 선교사에 의해 도입되었습니다. 물론 존 로스가 띄어쓰기를 도입한 것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재였지만 그의 시도로 인해 띄어쓰기의 장점이 발견되고 일반화되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큰집'과 '큰 집'의 차이를 공백 하나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맞춤법의 띄어쓰기 지옥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일이 다 좋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전은 제가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던 때에 구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전자사전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실 사전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불편하기 그지없는 형태의 데이터베이스입니다. 휴대하기에는 무겁고 검색 기능이 수동이고 업데이트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은 본래의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물론 두꺼운 사전이 냄비 받침이나 베게로 쓰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가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거나 머리가 복잡하거나 또는 글을 쓸 때 마땅한 대체어가 없을 때면 사전을 꺼내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식의 산책 같은 기분으로 아무 연관 없는 사전의 페이지를 읽다가 실마리를 찾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기능도 이제는 핀터레스트라는 사이트가 대체해 가고 있습니다만 아직 남은 마지막 사전의 기능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다만 이 사전은 일반적인 사전과는 조금 다릅니다.
사전에 대한 소개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사전은 우리나라식 독음으로 한자를 가나다순으로 배치해서 해당 한자가 쓰인 단어들을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주로 읽히는 형태와 음독의 구조를 설명해서 우리 독음과 일본식 독음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저도 이 사전을 통해서 일본어 음독메커니즘을 이해하기에 매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전이라기보다는 매우 집대성된 교재 같은 느낌입니다.
이 사전이 교재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말의 발음이 일본어에서는 어떻게 바뀌는지를 정렬해 둔 패턴북이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아무 생각 없이 순서대로 읽다 보면 변화의 패턴을 익힐 수 있습니다. 다만 소리를 따라 읽는 음독에만 해당합니다. 뜻으로 읽는 훈독은 국어사전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전은 상태가 너무 좋아서 일단 중고 물품으로 판매를 해볼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 동안 판매해 보다가 팔리지 않으면 폐기할 예정입니다. 이제는 쓸모없는 사전이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또 새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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