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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死LB008] EBS교육방송 일본어회화 [ISBN 정보없음] 홍익미디어 - 日本語を習いましょう

정보는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생명을 다한 책들을 폐기하기 전에 소개하는 자연死도서관의 제8호 서적은 EBS 교육 방송에서 기획하고 홍익미디어에서 발행한 일본어 학습서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정말 이 블로그의 메인 컨셉인 '자연사(自然死)'에 아주 딱 들어맞는 경우입니다. 이 책의 주제가 현재 시점에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지식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게 된 미디어가 맞는 쓸쓸한 말로를 보여줍니다. 여전히 일본어 회화를 공부하려고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으로 공부를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책의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었고 책의 내용은 너무 오래된 형태라서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입니다. 신석기시대를 살던 우리 조상과 현재의 우리는 모두 곡물을 주식으로 하지만 현재 우리집에서는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책이 발행된 시기에는 생활속에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전화기는 설치된 자리를 늘 지키고 있는 물건이었고 오직 통화를 할 때만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TV와 신문이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우 중요한 매체였습니다. 이 책도 TV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교재로 발행되었습니다. 1993년 3월부터 1년간 매월 새로운 시리즈가 발행되었습니다.

 

EBS는 학교 교육을 보충하기 위해서 설립된 것이기에 의무교육 과정인 초중고 교육과정을 주로 다룹니다. 하지만 몇몇 교양프로그램도 존재했고 대표적인 것이 어학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본어, 중국어, 생활영어 등 초급회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일 년 단위로 방송했습니다. 일본어 회화는 매주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일주일에 4번 밤 시간대에 방송되었습니다. 방송은 25분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방송 내용을 책으로 펴내서 예습과 복습이 가능했고 더 자세한 학습도 가능했습니다. 대게 새 시즌은 새 학기와 같은 매년 3월에 시작했고 1년 단위로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90년대의 중, 고등학교 남학생은 대부분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빠져있었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80, 90년대의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버블 시대의 일본이 전 세계를 주도했기 때문에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빠지게 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본문화에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일본문화가 개방되지 않았기에 일본의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국내에 정식 발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습게도 정식 발행이 되어있지 않았기에 불법 복제품을 이용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아서 오히려 공공연하게 불법복제물이 유통되었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저작권에 민감하지도 않았기에 일본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해적판 만화책들은 꽤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식 발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글 지원도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타쿠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일본어를 배워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게임을 조금이나마 원활하게 하려면 메뉴에 써있는 일본어라도 읽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혼자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중학생 시절의 제는 혼자 최대한 경제적으로 일본어를 배울 방법을 찾아다녔고 그 와중에 발견한 것이 이 책이 사용되는 EBS의 일본어 회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렇게 EBS의 일본어 회화 프로그램을 보면서 히라가나를 외우는 것으로 제 일본어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과과정에 제2외국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혹시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상당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독일어 시간에는 혼자 일본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이 책이 함께했습니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을 라이브로 보는 동안 학습 과정을 다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1년 치 교재는 샀지만 진도를 모두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해에 새롭게 시작하는 시즌은 보지 않고 비디오로 녹화한 화면과 이 책으로 혼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다 보니 일본어를 해석해달라는 부탁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당시 제 일본어 능력으로는 누군가의 부탁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부탁을 멋지게 해결해 주지는 못했지만,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는 크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일본어 공부를 참 재미있게 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공부는 계속했습니다. 사실 공부라기보다는 계속 일본어를 접하다 보니 실력도 자연스럽게 늘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가면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공부 없이 일본어능력시험을 보기도 했습니다. 두근두근하면서 처음으로 본 JLPT 3급이 생각보다 쉬워서 3급 합격 후 바로 1급에 응시했는데 첫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물론 JLPT가 난도가 높은 시험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공부한 성과처럼 느껴져서 매우 기뻤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혼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외국이 공인하는 자격까지 갖게 되었기에 제게는 참 고마운 책입니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를 더 깊이 알면 알수록 관심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으로 말미암아 한 선택이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져서 이제는 추억의 물건으로 남겨둘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언제 다시 할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TV 방송이 가진 사회에 대한 강한 영향력은 점점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어학 공부를 위해서 TV 앞에 앉거나 비디오테이프에 방송을 녹화하지도 않습니다. 방송사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서 우편엽서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오하요우는 여전히 오하요우이고 아리가토오는 여전히 아리가토오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 같습니다. 결국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모든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