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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死LB009] 뉴에이스 일한사전 금성교과서 - New ace 日韓辭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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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이 권위를 상징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고 그 내용임에도 책이 더 눈에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이 패러다임도 새롭게 개편 중입니다.

 

정보는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생명을 다한 책들을 폐기하기 전에 소개하는 자연死도서관의 제9호 서적은 금성교과서에서 발행한 일한사전입니다.

 

과거에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개념은 매일매일 생겨납니다. 과학적 정의는 이 방법을 통해 정립되었으며 지금도 반증적 반증을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진리를 향해가는 끝없는 여정 같은 것입니다. 과학적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관측적으로 증명한 것처럼 기존의 확고한 정리도 객관적으로 증명된 단 하나의 예외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라도 단 하나의 균열로 변화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발견과 기술이 짜릿함을 선사하는 이유입니다.

 

종이로 만들어진 두꺼운 책은 집대성의 의미가 매우 강합니다.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인류는 파피루스 줄기에 기록을 해왔으며 종이와 문서는 공신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책 자체가 엄청난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소수만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었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이나 법전이나 결국 인간이 만든 기록물일 뿐이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 덕분에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족보를 만들어서 집에 모셔둬야 가문의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국어대사전이나 백과사전을 들이는 것이 당연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사전은 영원할 것 같은 미디어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는 누군가와 서로 다른 사실을 주장할 때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책을 가져왔습니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에 검색해 봐!'라고 했을 것입니다. 과거는 그랬고 시대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사전 또한 전자사전이라는 과도기를 거쳐서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영역 안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PMP나 MP3플레이어도 다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사실상 사멸했습니다.

 

사전은 대부분 무거워서 휴대가 힘듭니다. 검색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여 일일이 페이지를 펼쳐봐야 합니다. 심지어 이 검색만을 위한 페이지인 색인으로 인해 책은 더 두꺼워집니다. 내용도 일단 인쇄가 끝나면 수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인쇄된 후에는 오탈자가 있다면 고칠 수가 없습니다. 최신 내용을 그때그때 반영하지 못하는 '고인 물' 같은 매체입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사용법은 '마법의 해결책'처럼 랜덤한 내용을 기대하며 펼쳐보는 것 정도 외에는 없습니다. 순서가 바뀌지도 않는다는 단점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중고 앱에서 검색을 해보니 예상외로 거래가 꽤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다 보니 저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과거의 산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는 연필을 사용합니다. 생각을 굳힌 후에 본 작업을 할 때는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이 속도도 빠르고 이후 연계 작업에도 효율적이라서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는 연필과 종이를 사용합니다. 이 손에서 감각을 느끼는 것이 창의적인 일을 할 때는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개인적인 느낌 때문입니다. 아마 사전을 여전히 사용하는 분들도 저와 비슷한 상황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분명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촉각은 작업을 할 때 사람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명 MZ세대가 LP에 호기심을 가지는 이유는 디지털이 채워주지 못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이유로 사전은 중고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예정입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서 역사 시료로 쓰이든 빈티지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이든 아날로그 감성 재생용으로도 쓰이든 그 쓰임을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적어도 이제는 책이 무속신화의 삼종신기처럼 추앙받을 일은 없기에 더 나은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현대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다는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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