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생명을 다한 책들을 폐기하기 전에 소개하는 자연死도서관의 제7호 서적은 정익사에서 발행한 컴퓨터용어사전입니다.
모든 기술은 과도기를 거칩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도 그렇고 소재와 관련된 부분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과거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중세인들이 천연두나 한센병을 신의 저주로 믿고 기도와 참회로 치료하려고 했던 것을 미개하다고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동설도 주류학설이었던 당시에는 대부분의 천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계측 장비의 발전으로 인해서 점차 오류가 발견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에 과거의 지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미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공부는 평생 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사회에 퍼지는 속도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기에 소위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이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인프라를 그대로 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자가 유지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그 인프라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고 쓰는 사람이 적더라도 사회적약자에 대한 배려로 유지하는 인프라도 많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도 과도기적인 형태의 물건입니다. 과거에 어드벤쳐 게임을 하려면 필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려가면서 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지금은 게임 안에서 맵메뉴를 열거나 진행과 관련된 힌트와 팁 등을 게임내에서 확인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기술이 일천하던 과거 게임에는 이런 기능이 아예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차라리 스스로 지도를 그리거나 힌트를 적어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게임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메모를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수첩과 볼펜이 일반적인 메모 도구였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프로그래밍 작업 중에 레퍼런스를 참조하기 위해서 사이트에 접속하지만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두꺼운 책을 가득 펼쳐놓고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랬고 여전히 아주 가끔은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책을 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여전히 과도기라는 의미겠지요.
이 사전은 컴퓨터와 관련된 용어을 정리한 사전입니다. 초판은 1990년에 발행되었습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고 통신속도도 느려서 세상의 컴퓨터들은 연결되지 못한채 섬같은 존재로 사용되던 시절입니다. 당연히 사전은 컴퓨터속에 존재하지 않았고 책장안에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 보급률이 높아져서 누구나 컴퓨터와 관련된 공부를 할 때는 학습은 곧 실습이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책으로 지식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실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는 이런 사전조차 컴퓨터 학습에 대한 열망을 해갈해 주는 단비 같은 존재였습니다. 덕분에 과거의 컴퓨터 학습서들은 매우 현학적이었습니다. 먹물냄새 가득한 낭만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언제나 실전을 해보고 싶은 목마름이 가득했습니다.
수첩이나 메모장을 쓰는 사람이 이제는 좀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겉모습이나 유행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첩을 사용하는 것은 효율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빅데이터의 시대에서는 정규화가 되지않고 검색조차 안되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때문입니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별명이 수첩 공주였습니다. 본래 수첩이 없으면 아무 말도 못 하는 수준의 멍청함을 놀리는 별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은 수첩 공주 캐릭터까지 만들어서 홍보에 이용했습니다. 그렇게 수첩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집단은 4년 후 대통령 파면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냅니다.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해상 조난사고가 났음을 보고하기 위해서 보고 문서를 출력해서 자전거를 타고 갔다는 시대의 코미디는 역사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서두에 말했듯 현재를 과거의 개념으로 살면 그것이 미개한 것입니다. 여전히 미팅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메모를 하면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수첩을 꺼내서 필기하면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도 계십니다. 여전히 우리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종이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위의 사진은 사전의 내용부분과 색인 부분을 구분해 본 것입니다. 검색을 위한 색인이 사전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점이 결국 사전을 모두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문서들이 개방되는 것을 넘어서 빅데이터로 수집되어 인공지능에 학습되기까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서는 공유될 수 있는 형태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이 블로그가 그러한 조건에 딱 맞는 곳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 사전의 마지막을 이곳에 기록합니다.
이 사전은 우리나라에 국제표준도서번호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발행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ISBN 번호가 없습니다. 책의 필증에는 도장이 찍혀있습니다. 정말 세월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사전 첫장의 일러두기 목차를 보면 변한 것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사전 첫 장의 '일러두기'의 목차입니다. 현재 사용되는 컴퓨터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 실제 기술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지만 큰 가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본래 처분을 하기 위해 마지막 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찍는 중에 이런 흥미로운 부분이 보여서 바로 처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역사서처럼 한 번쯤 심각하지 않게 사전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시대가 느껴지는 '데이타 통신'이라는 표기가 눈에 띕니다. '데이타 통신'은 '데이터 통신'과 어떻게 다른지 오늘부터 곁에 두고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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