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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死008OE] 헬로키티 휴대용선풍기 아로마 얼굴선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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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하나의 죽음도 함께 태어납니다. 자연死박물관 제8호 전시품은 휴대용 선풍기입니다. 우리집 재활용품 수집통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제품은 파손된 부분이 없으며 모터의 작동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자연死박물관에 전시될 만한 물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사용할 확률이 없다면 죽은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자연'뇌사'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헬로키티의 얼굴을 한 이 제품은 휴대용 선풍기입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여아가 사용하면 딱 어울릴법한 아주 귀여운 선풍기입니다. 실제로 이 제품의 주인이 초등학교 다닐 때 사용했습니다. 재활용품을 내놓는 중인 눈에 띄어서 상태를 살펴보니 고장이 난 것은 아니지만 사용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일단 뚜껑을 여 닿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뚜껑을 고정하는 경첩 플라스틱이 경화된 것인지 뚜껑 여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경첩의 쐐기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힘을 줘야 간신히 열리는 수준이었습니다. 제품 자체가 정밀도가 높지도 않고 외장에 사용된 플라스틱과 같은 단단한 물성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있어서 오래 사용하면 부서지는 것이 당연한 구조였습니다.

 

제품의 용도는 선풍기이지만 선풍기로서 의미 있는 수준의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팬의 크기가 작고 모터의 출력도 낮은 편이다 보니 선풍기가 내는 바람이 세지 않습니다. 날개 중심에는 아로마 향을 내보내기 위한 장치가 달려있습니다. 바람의 세기를 조정하는 기능도 없습니다.

 

뒷면의 모습입니다. 산리오의 공식 사용권을 가진 제품임을 표시하고 있지만 그 이외에 제품과 관련된 어떠한 스펙 정보는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자제품이라기보다는 액세서리에 가까운 제품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애초에 기능도 액세서리에 가깝습니다.

 

배터리 삽입부를 여는 손잡이입니다. 열림방향이 표시가 되어있지만 제품 뚜껑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의 유격이 적어서 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칫잘못하면 쐐기 부분이 부서질 것 같아서 손으로는 열수가 없었습니다. 도구의 힘을 빌려서 열어봤습니다.

 

AA 건전지가 2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건전지 4개 정도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용되는 건전지의 수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3V 수준의 전압으로 가동되는 모터가 만드는 바람은 매우 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동을 해보니 역시나 시원한 수준의 바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바일 시대 이전에 사용되던 제품이라서 충전식 배터리가 사용되지 않는 것도 사용하기 꺼려지는 부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충전식 장치에 익숙해져 버린 요즘에는 건전지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번거로운 일로 느껴집니다. 야외 사용 중에 방전이 되었을 때 보조배터리를 통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이제는 큰 단점입니다.

 

하지만 캐릭터 상품은 여러 가지 사용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쁜 쓰레기'라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예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엄청나게 큰 장점입니다. 착용하면 기분 좋아지는 장신구라고 생각하면 선풍기 기능 따위 애초에 없어도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사용으로 낡고 더러워진 캐릭터 제품은 그 가치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잡다한 기능상의 불편함보다도 블링블링함을 잃은 시점에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의 가치도 단순히 기능이나 효율성으로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 오래된 선풍기는 강한 바람을 내지도 못하고 여닫기도 힘들고 건전지를 갈아 끼워 줘야 하는 불편함을 가진 제품입니다. 하지만 한 어린 소녀가 내일 갈 나들이에 이 선풍기를 목에 걸고 나갈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주인에게는 버려졌지만 안쓰러움이 느껴져서 자연死박물관의 한켠에 그 존재를 남겨둡니다. 비록 물건이지만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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